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된 정간공 이명 묘역에는 신도비와 함께 문관석 2기, 석등 1기, 묘갈 1기, 망주석 2기를 포함한 묘역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도비는 조선 명종때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 이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비문은 외아들 이응로의 부탁으로 이조판서 김귀영이 지었고, 글씨는 형조좌랑 심충겸이 썼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중종·명종 때의 관직생활 및 그의 성품과 자손들에 대해 적혀 있는데, 특히 을사사화 때 피해를 받은 문사들의 신원을 위해 노력하여 형조판서에 올랐던 그의 행적이 잘 적혀 있습니다. 그는 형조판서에 이어서 호조, 공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품이 단정하며 직무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아 일생을 청백리로 일관하다가 생을 마쳤으며, 죽은 후 정간이라는 시호가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묘역에는 공의 부, 조모 삼대의 분묘와 실전된 선조들의 설단이 있습니다.
정간공 이명 묘역은 각심재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초안산로7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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